갈보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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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의 외출 (최용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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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터내셔널갈보리교회 작성일19-11-09 21:59 조회3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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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의 외출 


  장모님께서 암 진단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가족은 처음 미국으로 들어올 때처럼 갑작스럽게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70 평생의 65년을 농아로 

살아오신 장모님께 유학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기가 어려워 모내기 두 번 하면 당신 딸과 손주들 데리고 돌아온다고 말씀드리고 떠나온 그 길을 아홉 번 심고 돌아가게 되었음에,,, 비행기가 이륙할 때 저의 마음에는 지난 유학 생활 동안 주께 눈물로 부르짖었던 그 많은 기도 제목들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생각하느라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갑작스러운 방문 동안 주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실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인간적인 계획을 버리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리는 일이었습니다. 그저 부르짖고 하나님만 바라볼때 주님이 긍휼을 베풀어 주사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것에 대한 확신을 안고 찾아갔습니다. 우리 가족은 편찮으신 어머니와 눈물의 상봉을 하였습니다. 편찮으신 어머님께서는 오랜만에 찾아온 딸과 사위가 좋아하는 도토리묵을 해놓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저와 저의 아내는 70 평생 가까이 농아로서 가난 속에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시고 허리 한번 못 펴시고 고생하신 아버님 어머님께 그동안 못 찾아뵌 

9년간의 시간 때문에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저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제 입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머님은 딸과 사위가 부여잡고 기도하는 순간마다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지난 8월 우리 교회에서 치유 성회를 인도하신 원준상 선교사님의 세종시 부흥회 때 참여하시고 다른 이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똑같이 

따라 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시는 모습은 지금 이 글을 쓰는 저의 눈에 왜 그렇게 눈물이 흐르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 때 묻지 않고 산골마을에서 농사만 지으신 어머니의 심령 안에, 우리를 사랑하셔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음을 확신합니다. 9년 만에 목사가 되어 찾아온 조카사위의 변신에 처가의 어른들은 주목하셨고 하나님께 관심을 두기 시작하셨습니다. 처가 거실에 걸려있던 어느 승려가 그린 호랑이 그림을 떼어내고 목자이신 예수님을 표현한 그림 액자를 달았음에도 예수 이름만 들으면 반발하던 처남이 더는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어머니가 예수님을 믿으면 좋겠다고 말하여 저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할렐루야! 처가 전체의 구원을 주께 올려드립니다! 아내는 장모님을 보살펴드리고 저는 낮에는 직장생활 시절의 동료들을 만나 전도하기 위해 바삐 뛰어다녔습니다. 그만둔 직장에 어찌 찾아갈까 고민도 되었지만,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대사로서 그들을 찾아가서 만나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함께 술 마시던 최용석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여 여전히 능글맞은 웃음을 던지는 옛 동료들,,, 식사 기도를 듣고 어이없어하며 동물원 원숭이 보듯 하는 그들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으나 그들에게도 복음의 생명력이 역사하실 것을 믿고 기대합니다. 돌아오는 날 새벽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고속버스의 운전기사는 성경을 틀어놓고 운전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20년 동안 한 교회를 섬겨오시면서 열심 있는 신앙인으로 자부하셨지만, 그분의 하나님은 소원 성취를 이루시는 분에 굴레쳐져 있었음을 대화 중 발견하였습니다. 그분은 복음을 몰랐고 가서 제자 삼으라는 예수님의 명령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20년 교회 생활 하신 그분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다 전하였을 그 정확한 순간에 제가 탄 버스는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하였습니다. 각각의 인생을 살피시고 세밀한 사랑으로 인도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순간순간의 기쁨 넘치는 여행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최용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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