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보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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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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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터내셔널갈보리교회 작성일20-09-13 19:38 조회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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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의 친구들>


최근 진행되는 룻기 강해 중, 나오미를 끝까지 따르는 이방 여인 룻과 같이,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의 친구가 되어준 여러 국가들과,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소개하고 싶은 많은 일화가 있지만 지면 사정상, 홀로코스트 기간 일어난 일화들을 나눈다. 1953년부터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박물관 야드 바쉠은 26,973 명을 열방의 의인들 ( Righteous among the Nations) 로 명명했다, 아들은 각국에서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어질 위기에 처한 유대인들을 비밀리에 보호하고 구해낸 이스라엘의 친구가 된 이방인들이다, 만일 이 일이 발각되면 당시 나찌에 의하여 사형에 처해짐에도, 그들은 생명을 걸고 유대인들을 도왔다. 어떠한 물질적 보상이나 명예를 원한 것도 아니었다. 


비록 로마 교황청은 나찌 독일과 동맹을 맺었으나 대부분 이탈리아 군들은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로 추방하라는 독일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자국내 5만명 유대인 가운데 4733명만을 아우슈비츠로 보냈다. 1943년 늦은 가울, 나찌 독일의 만행에서 보호하고자, 덴마크는 자국내 8000 명의 유대인 중, 7200 명을, 덴마크를 떠나, 유대인 난민처를 제공하였던 스웨덴으로 보냈다. 2차 세계 대전 기간,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많은 유대인들이 알바니아의 난민처로 피신하였다. 본국이 독일에 점령당한 기간중에도, 알바니아의 난민처에 거하던 유대인 단 한 명도 아우슈비츠로 보내어지지 않았다. 물론 알바니아 본국에 있던 200명의 유대인도 전원 무사하였다. 비록 불가리아 정부가 자국내 50000 명의 유대인들에게 여러가지 제약을 주긴 했지만, 독일의 지배를 받을 때, Boris 3세 왕은 자국내 유대인들 단 한명도 죽음의 캠프로 보내는 일을 끝까지 성공적으로 막아내었다. 1940 - 1944, 프랑스 중부 , 신교도들이 사는 Le Chambon-sur-Lignon 이라는 마을의 주민은 유대인 5,000명을 숨겨주었다. 또한 헬싱키 주재 독일 대사는 아돌프 히틀러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핀란드 내 유대인 시민들은 한 사람도 아우슈비츠로 보내어 지지 않은 것 같다고 보고했다. 


독일의 Helmut Kleinicke는 1933년, 나찌 당에 조인하여 고급 간부가 되었다. 그는 북 시실시라 Chrzanow 에서 건축 공사를 지휘했는데 아유슈비츠로 수송되는 유대인들을 현장 노동자라는 명목으로 구해내었다, 그의 지하실에는 아우슈비츠로 보내어질 수 밖에 없는 많은 약하고 나이든 유대인들을 피신시켰다. 생명을 건 모험이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수백명의 유대인들이 구출되었다. 독일계 체코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 역시 나찌 당에 속했지만, 자신의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모든 재산을 바쳐서 유대인 1,200명의 목숨을 구하였다. 또한 나치가 폴란드에 사는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위해 어느 유대인 학교를 급습했을 때 야누스 코자크 선생님은 부들부들 떨고 있는 유대인 학생들과 함께 트럭에 올라 수용소로 끌려가 학생들과 함께 가스실로 들어갔다. 그는 폴란드인이다. 가스실에서 비참하게 죽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공포에 떠는 어린 학생들을 그냥 보낼 수 없어 그들과 함께 트럭에 올랐고 함께 수용되고 마침내 아이들과 죽음까지 함께 한 것이다. 한편 영국의 위임 통치 기간, 팔레스타인에 군복무했던 영국장교 Orde Wingate 는 이스라엘 군 창설에 지대한 공로를 세운 인물이다. 당시 팔레스타인은 유대인 정착민들에 대한 아랍인들의 적대감이 격화되어 위험한 곳이었다. 


  윈 게이트는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고 있었고 이스라엘 땅을 사랑했다. 어느 날 그는 유대인 군대를 일으켜 훈련시키는 일을 도와야 한다는 부르심을 느꼈다. 그리하여 지하조직을 통해 모집한 젊은 유대인 병사들에게 병기학, 개인 훈련과 윤리, 전투 전략, 체력 훈련등을 성경적인 확신가운데 가르치고 훈련했다. 그는 성경을 펴서 손에 들고 말씀을 인용하며 외쳤다. “ 너 유다의 사자들이 올라가라. 너 요셉의 아들들아!” 이 훈련병들은 경험도 없었고 장비도 형편 없었다. 1900년간 열방에 흩어져 있던 유대 민족은 전쟁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요 자기 방어 심지어 전투를 수행할 열정도 다 잃어버린 상태였으나 윈게이트는 이스라엘 가운데 전투 정신을 불어넣으며 이들을 군사로 훈련한 것이다. 이러한 윈게이트의 초기 제자들은 후에 이스라엘 군대의 최고 지도자들과 장군이 되어 현재와 같은 막강한 이스라엘 군대를 세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윈게이크 장교를 기리며, 이스라엘의 친구라는 호칭을 주었다. 


하나님은 중보자 리즈 하월즈에게 이스라엘의 독립에 관한 마음을 1938년 9월에 주셨다. 그는 이스라엘 건국에 대한 깊은 부담을 가지고 중보기도를 시작하는데, 성령의 감동을 따라 270 에이커의 땅을 구입하고, 유대인 난민아이들을 위한 웨일즈의 도피성을 준비한다. 영국 정부 에서는 이스라엘 난민 아이들의 입국을 허용하게 되면 1인당 50 파운드를 지불해야 하므로 이 일을 위해10만 파운드를 대학에서 헌금하기로 하고 그 동안 대학이 소유하고 있던 모든 토지와 건물을 팔아 내놓는다. 1947년 11월 27일 국제연합에서 팔레스타인의 분할 건이 통과되어 이스라엘의 독립이 기정 사실화 욀 때까지 리즈 하월즈는 자신의 성경학교 교사, 학생들과 함께 분초를 다투며 중보기도에 몰두하였다. 이 외에도 룻과 같이 이스라엘의 친구가 되어준 무수한 이방인 교회와 성도들이 있을 것이다. 룻을 통해 다윗이 태어나듯, 부디 많은 이방인 교회가 이스라엘의 친구가 됨으로, 예수님 다시 오시는 길을 준비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성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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